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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이란.jpg
 
 
작성일 : 19-05-07 14:53
교수고 의사고 뭐고 간에 최저임금으로 일하세요.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⑥] 한국은 머물고 싶은 나라입니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126  
   http://omn.kr/1j5y0 [4017]
5편 "우린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딸이 울었다(http://omn.kr/1iygr)에서 이어집니다.

고려인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하며 한국에 오기 전 생활에 관해 물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요?" 

기술자, 교사, 의사 등을 말해준다.
다음 질문을 꺼냈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세요?" 대답은 단순해진다. 
"회사요." 

"무슨 회사요?" 
"잘 모르겠어요."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예전처럼 말해주지 않았다. 대답을 듣지 못해도 추측은 가능했다. 2014년 재외동포재단이 조사한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 실태 조사>를 보면 국내 고려인의 70% 가까이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공단 내 제조업체나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무슨 일 하세요?" 
"핸드폰 부품 만들어요." 

부모 세대에게 묻자 서툰 한국말로 답한다.

공단 인근 동네의 저녁 풍경은 승합차에서 삼삼오오 내리는 이들로 채워진다. 퇴근 버스인 승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안산 땟골마을(선부동)도 마찬가지다. 
 
안산시 땟골마을 풍경 안산시 땟골마을 풍경
▲ 안산시 땟골마을 풍경 안산시 땟골마을 풍경
ⓒ 고려인지원센터 고려인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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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에서 고려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내려 무리 지어 걸어간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아 보인다. 여성 노동자들은 공단 내 부품업체에서 일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들이 주로 하는 작업은 도금, 염색, 납땜 등이었다. 열을 가하고 흄(가스)이 나오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여성 고려인 노동자 중 한 명인 소냐는 한국에서 일을 구한 첫날 바로 야간 잔업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한 탓에 직장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생 첫 직장에서 첫날부터 하는 잔업이라. '안 힘들었어요?'라고 물으니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무엇이 괜찮은 걸까.

최저임금 일밖에 없다
 

2007년 구소련 지역 동포들에게 방문취업비자(H-2)가 발급된 후 국내 고려인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출입국관리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4만 명이라 추정되던 수가 5년 사이 2배 넘게 늘었다. 안산 땟골마을, 광주 고려인마을(월곡동) 등 공단 인근 저렴한 주택가에 자신들만의 거주지도 형성했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F-4)도 있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50% 이상이 방문취업 신분이다. 재외동포비자는 발급기준이 대학졸업자, 법인기업대표, 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등으로 한정돼 취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비자를 받았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고려인 대부분은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 그런데 재외동포비자는 국내 취업질서 유지를 이유로 단순노무직 취업을 금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이 단순노무직밖에 없어 비자를 숨기고 몰래 일한다.

한국은 이들의 학력도, 러시아에서 익힌 기술도 모두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에 고려인들은 '공장에 가면 뒤에는 교수, 앞에는 박사, 옆에는 음악가가 있다. 떠나온 나라에서 직업이 무엇이었든 지금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진다.

한국인 빼고 다 똑같아요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배울 새도 없이 취업부터 한다. 강제이주 세대 부모들이 짐 보따리 한두 개를 가지고 중앙아시아로 간 것처럼 한국에 온 이들도 번번한 세간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 낯선 곳에선 모든 것이 비용이다. 돈부터 벌어야 하는 현실 탓에 언어를 배울 기회는 멀어지고 파견·일용직 굴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직장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니 한국 거주 10년 차인 따냐가 말한다.

"한국인 빼고 다 똑같아요." 

무슨 말일까. 직장 동료 대부분이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라 했다. 한국인은 얼마 없다. 

"한국인 빼고는 무시당하는 거 다 똑같아요." 

같이 일하는 친구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언어가 미숙한 그 친구는 지금 공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한다고 했다. 

"힘든 거 시켜요. 자기들 하기 싫은 거." 

여기서 말하는 힘든 일이란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근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육체 작업을 뜻한다. 그래도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가 서로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한국식'으로 일해야 하는 것. 

소련 집단농장에서 목표를 몇 배나 초과하는 수확량을 내며 놀라운 노동 능력을 보여주던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맞았다. 

"러시아에서처럼 일하면 안 돼요." 

컨베이어벨트 속도는 국적 상관없이 평등하게 빠르다. 지난 2년간 전자회사에서 일했던 레라는 이렇게 말했다. 

"쉬는 시간 하나도 없어요. 부품이 30초마다 나와요. 그런데 기계가 3개. 제품 넣고 스타트 누르고 두 번째에 넣고 스타트 누르고. 3번째 기계하고 나면 첫 번째 기계에서 (완성제품) 나오고 있어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런 속도로 일해본 적 없다. 그렇게 일했는데 월급날마다 임금 계산이 안 맞았다고 했다. 잔업수당 등이 늘 적게 계산되어 나왔다. 

"돈 (더) 달라는 말을 사무실에 가서 매달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자존심이 상해요. 한두 번도 아니고 실수로 보기 어렵죠. 매달 안 맞았으니..."

말이 서툰 이들이 월급 액수를 따지러 사무실로 매번 찾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을 제대로 못 해 손해도 많이 봤다고 한다.

3명 중 한 명은 억울한 일

"친절해요." 

한국에서 살기 어떠냐고 물으면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다. '한국 사람 친절해요?'라고 되물으면 "러시아에서는 상점에 물건을 사러 가도 퉁명스러운 대접을 받고 온다"고 답한다. 

상업적인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냉한 표정 앞에 고려인들은 '내가 설마 소수민족 동양인이라서 그런가'하는 의심을 한다. 이어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의문이 든다. 한국 사람은 친절한데 왜 일터에서는 친절을 보기 힘든 걸까? 한국에 온 첫 달에 임금체납을 당했다는 아냐도 '친절한 한국'을 포기 못 한다. 

"세상에 여러 사람이 있잖아요. 그냥 내가 안 좋은 곳, 안 좋은 사람을 만난 거라 생각하고 말아요." 

과연 그럴까. <국내 거주 고려인 동포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고려인 응답자 중 30%가 부당해고, 27%가 임금체납을 경험했다. 3명 중 1명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부당해고 사례를 보자. '10년간 일하며 마음에 맺힌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따냐는 "말대꾸 했다"며 해고된 일을 꼽았다. "불량이 났다고 욕을 해서 서툰 한국말로 해명을 했는데 관리자가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 나가야 했다"고 했다. 

"당일 해고가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할 수 없었어요. 말을 못해 참을 수 밖에 없었죠."

말을 못한다는 건 언어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말 못할 처지 또한 포함된다. 이주노동자가 아니었다면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못하고 가만히 당하기만 했을까.
 
안산시 땟골 인력중개소 안산시 땟골 인력중개소
▲ 안산시 땟골 인력중개소 안산시 땟골 인력중개소
ⓒ 고려인지원센터 고려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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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가 더는 해고가 아닌 고용형태가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 파견·용역·비정규직 노동자는 5명 중 1명 꼴이다. 파견노동과 도급용역 비율은 갈수록 늘어난다. 사회적 위치가 낮은 고려인들은 가장 빨리 파견인력이 된다. 파견업체(직업소개소)를 통하지 않으면 일을 구할 수 없다. 단기 일용직으로 일한다. 해고라는 말도 필요 없다. 파견업체에 전화해 '우리 저 사람 못 쓴다 데려가라' 하면 끝이다. 고용이 일회용이 되는 셈이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온다.' 사장님이 친절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라하면 가야 하는 사람을 모아 놓고 친절할 필요가 없다. 한국 정부는 저렴한 이주 노동력을 영세한 산업단지에 몰아넣었다. 단순노무직 또는 일손이 부족한 농업·어업으로 이들의 일자리를 국한했다.

조선족 동포(70만)는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다음이 고려인(8~9만)이다. 동포라 말하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지원하지 않는다. 장기체류도 허락하지 않는다. 방문취업비자는 4년 10개월 동안 유효하다. 장기체류를 허락한 재외동포비자는 정착지원 없이 이들에게 취업제한만을 둔다.

말을 잃은 독립유공자 후손들

경기침체로 산업단지마다 일거리가 줄고 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밑바닥 노동이다. 그곳에는 고려인들이 일한다. 취업을 걱정해준다며 이렇게 말하는 한국인도 있다.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못해 불만도 말 안 하고 조용히 일만 한다. 그러니 사장님들 은 고려인들 쓰세요."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고려인 1세대는 모두 독립유공자'라고 했다. 1세대의 이주지인 연해주는 항일운동의 거점지였다. 정치적으로 각성된 이들이 모여 창의소, 13도의군, 권업회 등 독립운동 단체를 형성했다. 볼셰비키(구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혁명을 옹호했다. 일본군은 물론 제국주의 백군과 전쟁도 치렀다.

그렇다고 고려인 1세대 모두가 독립유공자인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실질적인 기여와 무관하게 타국에서 고난을 이겨낸 이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한국에 와 첫날부터 야간잔업을 했다'는 소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독립운동가의 증손녀다. 첫 달 월급을 체불당한 아냐는 할아버지 이름이 담긴 마을영웅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을 '말을 못해 부리기 쉬운 인력'이라 부른다.

이주민 정착에 필요한 언어·주거·보육 등에 대한 지원 정책이 고려인들에게는 미비한 수준이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은 지원책에 대해 말하면 반감부터 드러낸다. 고려인이 말 못하는 단기 노동력이라 편리하고 저렴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대통령의 순방 길을 뒤따를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향한 신북방정책이 그러하다.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머나먼 국외의 고려인은 독립운동가들의 후예다. 그러나 국내 공단에 자리 잡은 고려인들은 산업의 필요에 의해 값싼 인력 취급당한다. 이 둘은 '국익'이라는 이름 앞에 편리하게 분리된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가?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 풍경
▲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 풍경
ⓒ 고려인지원센터 고려인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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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고려인지원센터는 저녁이 되면 더욱 북적거린다. 학생들의 방과후수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을 마치고 한글 수업을 들으러 오는 고려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6일 한국식 노동강도'로 일하면서 퇴근 후 수업을 들을 만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이가 얼마나 될까.

일터에는 고려인을 비롯해 외국 이주 노동자들이 가득하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한국말이 능숙해진다. 점점 부모와 자식 간에 소통도 힘들어진다. 이들 사이 소통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문화 가정(F-6 비자)에는 방문수업 등 맞춤형 한국어교육이 진행된다. 다문화가정이 받는 보육, 의료 등의 지원이 고려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복지 정책을 두고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정착할 이주민으로 보고 하는 지원은 노동력으로만 보고 하는 지원과 다르다.

내게 관리자의 폭언과 차별에 대해 실컷 이야기를 하던 어떤 이는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후회 안 해요. 제 어머니가 우즈베키스탄에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저를 제외하고 모두 오지 못했어요. 러시아에 사는 언니들은 돈을 구할 수 없어서 오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는 (돈이 있어서) 갈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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