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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11 17:05
[재외동포의 창] 잊혀진 고려인의 항일운동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  
   http://webzine.korean.net/201906/pages/sub04_03_01.jsp [3]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그런데도 아직 고려인들의 위대한 항일운동에 대하여 잘 모르는 분들이 간혹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1860년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22년 말까지 러시아 전역에서, 특히는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지역 민족운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연해주에서는 1905년부터 1908년까지 두만강 대안인 연추(현재 크라스키노)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운동을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 대표적인 의병장으로서는 이범윤, 최재형, 홍범도, 안중근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을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민학교 등 민족학교를 설치하여 동포 자제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행하는 한편 신문 등을 간행하여 국내외 소식전달과 항일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하였다.


셋째,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될 기미가 있자 연해주 한인들은 유인석을 중심으로 13도의군을 조직하여, 국내로 진공하여 일제를 몰아내고자 하였다.


넷째, 1911년 연해주 한인들은 한인자치기구로서 권업회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자치활동과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아울러 신채호, 이상설, 장도빈 등을 주필로 하는 권업신문도 간행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또한, 이동휘 등을 중심으로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 일제에 대항하여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다섯째, 러시아지역의 한인들은 1919년 2월 국내외에서 최초로 대한국민의회라는 정부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만주와 국내 등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한편 상해임시정부와 도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민족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여섯째, 대한국민의회는 1919년 3월 17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크라스키노 등 여러 지역에서 3·1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있는 한인들은 한민학교를 중심으로 활발히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1905년부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종결되는 시기까지 동포들의 인적 물적 지원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기여하여 민족운동발전에 공헌하였다. 그런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종결된 이후 연해주 지역에서는 소련의 대한인정책의 변화로 인하여 더 이상 독립운동이 전개될 수 없었으며, 1937년에는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18만 동포가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려인들은 일제의 강점하에서도 끊임없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고려인의 위대한 적극적 항일투쟁에 대한 기념과 감사, 기억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더 고려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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