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반 한국어수업 맹숙영샘의 소감문~
스트라우스도이체! 뗏골 아이들
‘찌고이네르바이젠이였던가?’
‘갑자기 사라사테의 음악은 왜 튀어 나오는 거야?’
‘이게 아닌데, 뭐였지! 아! 그래 스트라우스 도이체!’
‘반드시 외워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선생님의 인상을 ‘파박’ 남겨야지‘. 다시 외워 봅니다. ‘스트라우스 도이체, 도시 다니에, 브리비아뜨’, 러시아 인사말입니다.
처음 고려인 아이들과의 만남, 수업을 준비하면서 인사말을 외웠던 1년여 전의 저의 모습입니다.
‘다문화 사회 전문가 과정’까지 모두 3년의 대학 과정을 마친 올해 2월, 저는 졸업과 동시에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다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졸업 즈음이 가장 열정이 왕성할 때니까요. 우리 학과 (서울 사이버 디지털 문화 예술대학교) 동료들과 선후배님들에게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였지요. 경험이 전무한터라 자원봉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확신도 이야기 하면서, 정말 그랬습니다. 공부는 3년간 많이 했지만 다문화 관련 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는 터라 정말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저의 열정이 닿았던지 올해 3월 저녁, 같은 학과 동료인 안산시청의 이태성 선생님께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뭐하세요? ” "그냥 집에서 놀고 있어요.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마땅치 않네요“
“안산에 오실 수 있어요?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아이들 가르치는 일인데요”
“물론이지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갈 수 있어요. 그거 할게요”
저의 장점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빨리 달려들어 해 본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없는 저에게 경험을 쌓게 하는 고려인 아이들의 ‘한국어 학습’,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자원봉사에요”
“자원봉사면 어때요 괜찮아요.”
그렇게 해서 저의 ‘안산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한 민족인 고려인의 굴곡진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등과 같은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그들의 안타까운 삶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역이주하여 돈을 벌고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 그들의 삶에 저도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한국어를 빨리 습득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보문고에 들렀습니다. 한글카드도 사고 여러 가지 교재들도 샅샅이 들추어 보았습니다. 그 중에 ‘열린 한국어’ 라는 교재가 저와 맞는 것 같아 구입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습 지도안도 짜고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수업 방법으로 한국어를 빨리 배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 한국어 교사로서의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수업 첫날, 처음 보는 선생님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호기심과 선량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오막심, 오워와. 율리아’ 이렇게 세 명이 저의 첫 제자들이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가 강의하는 것을 잘 따라하려는 모습이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첫 수업의 긴장도 잊고 1시간 30분을 그렇게 마쳤습니다.
수업을 하고 나니 아이들이 그럭저럭 한글은 읽는데 글자의 뜻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파악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통문자를 가르치는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경험이 중요한 것이었죠.
다음날은 ‘아나스타시아’도 왔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한글을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당황스러웠죠. 초보 교사로서 처음 지도한 아이들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준비해 왔는데 그 수준을 벗어나는 아이가 왔으니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도 앞뒤로 그림과 글자가 연결되어 있는 한글카드로 재미있게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림이 있는 카드다 보니 잘 따라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워와’는 지금 5학년인데 동생들과 앉아 통문자만 배우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이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더 많은 글자를 알아야 될 텐데 하는 생각들. 수준이 들쑥날쑥한 아이들과의 수업이다 보니 아이들의 학년에 맞춘 한국어 수업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저도 한국어 교사로서 경험이 쌓여 가고 있기 때문이었겠죠.
여름이 시작되는 초입부터 아이들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 본토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부모가 계시는 안산 ‘뗏골’ 마을로 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온 김에 한국어를 공부하러 학습장으로 오기 시작했습니다.아이들의 연령도 5살부터 15살까지 다양했고 인원수도 10~15명 정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수준과 연령이 다양한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수업이 느슨해지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러시아로 수다를 떨며 수업은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고 사랑으로 가르치려던 마음은 없어지고 ‘조용히’ 하라는 선생님 특유의 하이톤을 내기도 하고, 아이들도 뒤죽박죽, 선생님도 뒤죽박죽. 집에 돌아와 조용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노래를 통해 한글을 가르치자’ K-POP에 익숙한 아이들이 아니기에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 선택해 노래도 부르고 가사도 읽어 보고 써 보게 하자는 생각.
제일 처음 선택한 노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었습니다. 다행히 교실에 컴퓨터가 있어, 노래를 여러 번 듣고 따라 부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프린트해서 준 가사를 한사람씩 읽어 보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따라 했고 가사도 제법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나와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습니다. 수줍어하면서도 잘 따라했고 다른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려는 아이들의 태도에 조용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고려인 아이들이 ‘사랑받는 아이들’임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센터 소장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고려인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기 쉽고 그러다 보니 자기들끼리 모여서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하고 한국인 친구들은 못 사귀에 되니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같은 민족인데.... 저라도 마음껏 사랑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 나이 53세, 아이들을 키울 때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지 깨달은 나이이기에 사랑을 먼저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해 주고 싶었고. 그것이 공부에도 인생살이에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몸치이긴 하지만 율동도 곁들여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두 시간 정도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니 이젠 아이들 입에서 심심하면 이 노래가 튀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놀다가도 이 노래를 부르고 먹다가도 부르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문장도 연습되고 단어 연습도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아서 산만해지기 쉬운 여름방학 동안에는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 선정해서 단어와 문장과 운율을 함께 배울 수 있게 가르쳤습니다. 다른 요일에 가르치는 선생님께서 “요즘 아이들이 노래를 입에 달고 다니네요. ‘꼭꼭 약속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요” 하셨습니다. 뿌듯했습니다.
한 달 정도 이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수업을 했는데 여름 방학이 끝나고 많은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나니 남은 아이들도 지루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지?’ 한국어 학습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단순하게 한글만 가르치는 것 보다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유발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자연스러운 습득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이어서, 물론 센터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기는 하지만 맛있는 간식거리에 대한 아이들의 갈증이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이들에게 음식을 챙겨 주기 쉽지 않은 형편들이었구요.
‘샌드위치’ 생각이 났습니다. 간단하게 식빵을 준비하고 감자 샐러드와 치즈, 딸기잼을 이용하여 샌드위치를 만들고 같이 먹어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재료를 준비해서 서울에서 안산까지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도 기뻤습니다. 거리와 무게 때문에 많은 양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을 뿐.
처음에는 단어를 알려 주었습니다. '샌드위치, 감자, 감자 샐러드, 잼, 딸기잼, 포도잼, 사과잼. 치즈 등을요. 그리고는 이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식빵에 잼을 발라요. 그리고 감자 샐러드를 넣어요. 치즈를 얹고 그 위에 식빵을 올려놓고 먹어 보아요.”
꽤 긴 문장이 완성되었지만 먹을 것을 보면서 하는 수업이어서 그런지 잘 따라 했습니다. 제 설명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고 한명씩 나와서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다 보니 그 자체로 재미있는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 만들고 발표가 끝난 다음에는 맛있게 먹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아이들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도 예뻤고.
추석 즈음이 되었는데 추석과 관련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글자만 가르치면 지루해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신문을 보다가 떠올랐습니다, ‘NIE를 이용한 한국어 학습’ 추석을 며칠 앞둔 때라 신문에서는 보름달과 추석 음식 등에 대한 화보와 큰 글자가 많이 실렸습니다. 이거다. 고민 할 것 없네. 신문의 화보와 글자를 오려서 칠판에 붙이고 아이들에게 추석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고려인들은 추석을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세월 이주와 방랑을 하다 보니 추석이라는 풍습이 없어진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이제 한국에 와서 사니까 추석에 대해 알아야 되겠지요. 다행이 센터에서 송편을 나누어 주어 송편에 대한 개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둥근 보름달이 하늘에 떠 있습니다. 추석에는 한복도 입고, 송편, 과일등도 먹고 제사도 지내요. 제사는 ....”
단어 하나하나를 알게 하고 접속사를 사용하여 문장을 연결해 보니 자연스럽게 문장 구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추석 수업은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3월부터 시작한 안산 고려인 마을 ‘뗏골’ 마을에서의 한국어 수업이 얼추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빨리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싶어 조바심도 냈지만 아이들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느덧 빠르게 한글을 익혀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힘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랜 이주와 유랑을 한 우리 민족인 고려인과 그 아이들이 한국에 정착해서 소외감을 가지지 않고 한국인으로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수업 중에 잘 하면 과하다 싶을 만큼 칭찬을 해 줍니다. 초등학교에서 많은 칭찬을 받지 못했을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없어 게슴츠레한 눈과 흐느적거리는 자세로 앉아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잘 해야 될 텐데. 그래서 많이 안아 주고 토닥거려 줍니다. 사탕 한 개로라도 마음을 주고 싶어 사탕과 껌, 초콜릿을 수업이 끝나면 한 개씩 줍니다.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에서 이루어진 한국어 교육은 단지 한국어 교사로서의 경험만을 얻게 해 준 곳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으려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인생의 풍부한 경험을 알려 준 곳입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즐겁고 유쾌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한국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지요. 아이들도 사랑해 주고요. 그럼 제 인생도 더 즐거워지겠지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매주 금요일 안산 뗏골 마을로 가는 제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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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반 자원봉사 선생님들
박창숙샘
신효승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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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반 자원봉사샘들의 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