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반찬가게를 하며 세 자녀를 키우던 그의 삶은 지난해 2월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급변했다. 피난민으로 가득한 기차에 몸을 싣고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폴란드와 체코를 전전하며 피난민 생활을 이어갔다. 임신 중이던 첫째 딸은 피난이 길어지면서 “벙커에서 살더라도 돌아가겠다”며 다시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지난해 7월 ‘고려인 너머’의 도움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이유다. 매일 밤 그는 “고향에서 가족들과 다 같이 모이는 날이 곧 온다”며 아이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7월에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복통이 심해 찾은 병원에서 정밀검사 끝에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매일 방사선 치료, 3주마다 약물치료를 받는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의료보험 덕에 병원비 폭탄은 피했지만, 주 35만원가량을 벌던 자동차 부품 공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박엘레아노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치료를 열심히 받아 꼭 병을 이겨내고 전쟁이 끝난 뒤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안산 화재, 자녀 넷 잃고 후유증…나이지리아 아빠엔 추석이 없다
중앙일보 심석용 기자 손성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