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고려인(카레이스키) 강제이주 80주년이 되는 해다. 1937년 9월 구(舊)소련 정부는 동아시아(연해주)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2000여 명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갑작스러운 강압 정책에 짐짝처럼 열차에 실린 그들은 한 달간 6500㎞를 이동했다.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지도자 위치의 고려인들은 사전에 처형됐다고 한다. 당시 열차가 정류장에 설 때면 굶주림과 추위 등으로 숨진 고려인들이 열차 밖으로 실려 나왔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사망자 숫자는 554명에 이른다.
부패한 시신은 열차 운행 중에도 차창 밖으로 버려졌는데, '백의 민족'의 시신이 얼마나 쌓였던지 훗날 강제이주 길을 ‘하얀 길’로도 부른다고 한다. 강제이주의 표면적 이유로는 연해주 지역 내 일본 첩자의 활동 방지다. 구 소련인들이 보기에는 고려인·일본인의 외모가 서로 비슷해 일본 첩자를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농업에 익숙한 고려인을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정착시킨 뒤 땅을 개간하는 노동력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낯선 동토(凍土)에 버려진 고려인들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황무지를 푸른 논밭으로 일궜다. 이 과정에서 겪은 고난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고려인은 아픈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이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낯선 ‘이방인’처럼 인식되고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세밑에 이런 인식을 개선하고 국내 거주하는 고려인 자녀들을 돕기 위한 취지의 행사인 ‘함께 시작’이 오는 9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고려인문화센터에서 열린다. 행사는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와 고려인 지원단체인 (사)너머,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등이 함께 마련한다. 고려인을 동포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 개정 보고대회와 공연 및 전시, 바자 등으로 펼쳐진다. 현행법상 고려인 4세의 경우 외국인으로 분류돼 만 19세가 되면 강제 출국해야 한다.
현재 안산 단원구 선부동을 중심으로 1만50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올해에만 3000명의 고려인이 안산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이들 자녀의 대부분이 한국어와 한글을 모른다. 이번 행사 바자의 수익금은 고려인 아동·청소년의 교육·장학기금으로 쓰인다.
행사 취지에 공감해 곳곳에서 후원 물품이 답지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먹을거리와 신세계 트레이더스 안산점은 이불, 엔씨 백화점은 의류 등의 후원을 약속했다. 14곳의 기업·단체·개인이 후원에 참여 중인데 보다 많은 기금마련을 위해서는 주위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국민위원회 김종천 사무국장은 “이번 후원회는 특별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을 시민과 함께 나누고 고려인 자녀를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했다”며 “고려인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나라의 문화를 알려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많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할아버지 나라 찾은 '고려인' 아동 돕는 바자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