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이네샤 할아버지는 소련군으로 독일 전쟁을 참전 승리한 후 다시 소련군으로 일본전쟁도 참여 하였다. 할아버지는 거시서 행방불명 되었다.
할머니의 성함은 박연옥이다.
"너는 밀양 박씨이다. "
"밀양 박씨임을 꼭 기억해주고 너는 경주 김씨임을 꼭 기억 하라"고 하였다.
박연혹씨는 김이네사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무시 무시한 1937년 강제이주 열차 이야기!
맨손으로 토굴을 파고 살아야 했던 이야기!
호랑이 소리에 기겁하던 이야기!
먹을게 없어 풀 뜻어먹던 이야기!
국적을 묻자
“우리는 고향이 없어요.”
“나는 88올림픽때 한국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우리피가 저렇게 잘 살고 있구나.”
“고려인들을 무시하는 이곳 문화 속에서 가슴이 뜨거웠어요.”
1991년 언니가 한국 연수를 다녀왔다.
“언니가 엄청 자랑을 하였어요.”
“선물도 엄청 좋았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먹고 싶은 메밀국수를 1937년 이후 처음 먹었어요.”
고려인 자조 모임이 있습니까?
“너무 힘들어서 생각 못해요.”
“동포, 노동자로서의 권리... 무서워서 생각할 수 없어요.”
“1937년 이후 너무 억눌려 살아와 생각할 수 없어요.”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해요”
“누가 뭐라고 하면 돈을 내야 하니까요.”
숨이 막혀 더 이상 질문을 던진 수 없다.
그러나 김 이네사는...
불안한 숨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려인들을 낮추어 보지 않았으면 해요.”
“일요일 까지 일하라고 하면 힘들지만 우리는 해요”
“할머니도 그렇게 해서 노력 영웅상을 받았고 엄마아빠도 그렇게 살아 내었어요.”
김 이네사는 48세 닭띠이며
남편은 거제도에서 노동하였고 본인은 수원에서 노동 하였다.
지금은 안산 땟골에 방 두칸을 얻었다.
방 두칸에는 남편과 나, 사위와 딸 3살 손자가 있다.
18살 아들은 서울에서 기술고등학교 기숙한다.
5월에는 너무 보고 싶은 엄마 아빠가 나를 보러 올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