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슈또베*에서
슬픔이 시작되었기에
슬픔이 끝나야 하는 곳
부끄러움이 시작되었기에
부끄러움도 끝나야 하는 곳
천산의 눈 녹은 물줄기가
북으로 천 리 길을 달리며
눈물과 통곡의 땅을 적시고
헐벗은 우리 농민들의 자식
강제이주 고려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심어준 곳
우리들 선배 고려인들은
뼈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피땀으로 거름을 이겨
버려진 자의 땅 우슈또베를
서럽도록 푸른 논밭으로 일구었다
먼 나라에 새 고향을 만들어 주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고향 우슈또베
낯섦도 추위도 굶주림도
위정자의 압제와 증오도
모질게 일어서는 잡초를
결코 짓이길 수 없었던 곳
죽음으로부터 희망은 절망이었지만
삶에겐 절망도 언제나 희망이었을까
고려인의 고향 우슈또베
나와 너와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노래로 흐르고 있었다.
<김병학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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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또베: 카자흐스탄 동남부에 우치한 군 단위지역.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민족이 1937년 스탈린의 박해를 받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버려졌던 곳.
*고려일보의 한글수호를 지원하고 고려인을 지원하며 중앙아시아 여러 형제민족들과
손을 잡는 일이 곧 '복'이니 곧 한 번 간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