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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땟골 사람들"

        우즈벡에서,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온 고려인들이 땟골에 모여 살아요


 
작성일 : 14-04-28 18:53
세 번째 이야기 -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4,356  

안녕하세요. 옥이의 땟골 사람 이야기. 벌써 세 번째 이야기네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블라디슬라브 아저씨입니다!!

출입국사무소에 모시고 다녀오는 길에 잠깐 너머 사무실로 모셔서 인터뷰를 부탁드렸어요

그럼 지금부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Q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제 이름은 '김 블라디슬라브'입니다. 나이는 49세 입니다.

 

Q : 아저씨는 언제 한국에 오셨어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저는 원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살았어요. 한국에는 2011년 8월에 왔어요.

                              그 때는 딸들은 우즈벡에 남아있고 저와 아내만 한국에 왔어요. 아내 이름은 '최 이리나'에요.

 

Q : 처음부터 온 가족이 함께 온 것은 아니군요. 그럼 아저씨의 딸들은 언제 한국에 들어온 거에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이번에 들어왔어요. 얼마 안됐어요. 일주일 정도.

 

Q : 그럼 우즈벡에 딸들만 있던 기간이 꽤 오랜 기간이었네요? 남겨져 있을 때는 누가 아이들을 돌봐줬어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아이들의 외할머니(아저씨의 장모님)가 돌봐줬었어요. 지금 그 분은 우즈벡에 혼자 계세요.

 

Q : 중간에 우즈벡에 5개월 정도 들어가셨다가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딸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을 우즈벡에 두고 오니까 아이들이

                              보고싶기도 하고 같이 지내고도 싶어서 우즈벡으로 잠깐 들어갔었죠. 가서 저는 아이들 출국을 위한

                              서류준비를 계속 했어요.

 

Q : 우즈벡에서의 생활은 어떠셨어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물가가 높죠. 한국에서 벌었던 돈을 우즈벡에 머물던 5개월 동안 다 써버렸을 정도에요.

 

Q :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우즈벡에서 지내신 거에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네. 근데 제가 태어난 곳이 그 당시에는 우즈베키스탄이었는데 소련 시대 거치면서 지금은

                              카자흐스탄이에요.

 

Q : 우와. 신기해요! 그럼 아저씨의 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은 어떻게 우즈베키스탄까지 가게 되셨나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조부모님은 원래 서울에서 태어나셔서 하바롭스크(Khabarovsk)로 가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가게 되셨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는 저희 부모님도 굉장히 어렸을 거에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캄차카(Kamchatka)에서, 저희 어머니는 사할린(Sakhalin)에서 강제이주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오게 되셨대요.

 

Q : 그래서 아저씨는 태어나실 때부터 우즈벡에서 지내신 거구나. 아저씨 형제는 어떻게 되세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2남 2녀에요. 위에 누나가 2명있고 형이 1명있어요. 큰 누나는 돌아가셨고 작은 누나는 카자흐스탄에 있고

                             누나 아들은 제 형(알렉 아저씨)과 함께 지금 한국에 있어요.  

 

Q :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꽤 많네요? 어릴 때부터 우즈벡에서 살아왔는데 왜 굳이 한국으로 오셨어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물론 우즈벡에 집도 있고 아이들 학교도 있으니까 거기에서 계속 생활하면 좋긴 하죠.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요. 일 구하기가 힘드니까 돈 벌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차라리 한국이 생활하기

                              더 좋아요. 아이들 학교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에 계속 있고 싶어요.

 

Q : 한국에서 생활하시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일하는 건 힘들죠. 그래도 너머에서 함께 동해도 가고 서울랜드도 가고. 여기서 이렇게 함께 지내는 건

                              재밌어요.

 

Q : 3년 정도 후에 다시 우즈벡으로 들어가셔야 하잖아요? 계획이 따로 있으세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큰 딸이 18살인데, 계속 한국에서 공부할수 있으면 한국에 계속 있고 싶어요. 한국에 오기 전에 9학년

                              졸업했고 college 성악과 2년 다녔어요. 아직 졸업을 한 건 아니고요. 애가 노래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데

                              한국에서 배우면 한국어로도 노래할 수 있잖아요. 애가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어요.

 

Q : 둘째 딸도 노래를 잘하던데. 가족들이 다 노래를 잘하나봐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저도 우즈벡에서 직업가수였어요. 12년 정도 동안 고급 레스토랑에서 노래했어요.

 

Q: 우와. 진짜로 가족 내력인가봐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원래 저는 건설기술학교를 졸업해서 그 쪽 일을 주로 했었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땐 "고분질"을 했어요.

                              매년 봄에 여러 지역의 땅을 빌려서 농사하고 가을이 되면 수확하는 거에요. 그렇게 돈을 벌면 또 다른 땅을

                              임대하는 거에요. 그러다가 소련시대 후에 직업 가수 일을 하기 시작했던거죠.

 

Q : 고분질이라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세요?

블라디슬라브 아저씨: 한국에서는 핸드폰 등의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판넬같은 것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일이라 몸에는 안 좋았어요. 그것도 정규직이 아니고 아르바이트였어요.


아저씨는 지금 연세가 꽤 많으신 편이어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계신 중이세요. 대신 아저씨의 아내 분께서 야간 일을 하고 계세요. 아저씨가 아저씨의 작은 딸하고 함께 와서 꼬마에게도 질문을 해봤어요.

 

Q : 안녕~ 이름이 뭐니?

비카 : 제 이름은 비카에요.(원래 이름은 빅토리아.)

 

Q : 부모님이 우즈벡에 안계셨던 동안 어땠어?

비카 : 그냥 잘 지냈어요. 엄마가 없는 동안 엄마 얼굴을 그리고 또 그렸어요. 내가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는지 아세요?

         엄마 얼굴을 많이 그려서  종이가 부족했어요. 우즈베키스탄보다 한국이 더 좋아요. 한국말이 더 마음에 들어요.

         우즈벡 말은 듣기도 싫고 이상하거든요.

 

 비카는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매우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 한국말은 모르지만 너머 사람들에게도 먼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요. 붙임성이 좋은 귀여운 여자 아이에요^^ 노래를 한 번 해보라니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귀엽게 "십오야"를 부르는 귀여운 비카!!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비카는 벌써 한국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물론 수업시간에 한국말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다행히 그 학교에는 방과후에 러시아 선생님께서 한국어 수업을 해주신다고 해요. 비카와 비카의 언니가 하루 빨리 한국에 적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블라디슬라브 아저씨께서 좋은 직장을 구하시길 바라면서!!

오늘의 땟골 이야기는 여기서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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