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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11 19:58
[체험수기]꿈은 이루어진다 _ 최나딸리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403  

[법무부 체험수기 공모글입니다]


최 나딸리야

꿈이 이루어지다.

 

꿈은 참 놀라운 성질이 있다. 그러한 특성으로 꿈이 실현되는데, 단지 강렬히 원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2년 전 한국에 왔다. 전에, 나의 친구들이 미국, 이스라엘, 캐나다로 떠났을 때, 나는 한국이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고향으로 오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 했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우리 조상에 대해 잘 모른다. 나는 60세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생활을 이뤘으며, 가족, 아이들이 지금 그곳에 있다. 난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우리 민족 모국에 대해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 아버지 최 동석은 내가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20세기 초반에 사셨고 강제 이주를 해야 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지만 결국 이곳에 남으셨던. 한국에는 할아버지의 아내와 3명의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 한국에서 길을 다니며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혹시 우리 친척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알수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가 우리 가족들의 족보라도 만들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렇게 한국에 있다. 첫 인상은 놀라움이었다. 화장실과 곳곳의 운동기구들을 보며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주는구나 느껴졌다. 그러나 행복감이 오면서 몇 가지 실망감도 왔다. 낯선 나라, 새로운 사람들, 낯선 향기들, 느낌, 모르는 언어, 습관들이 긴장감을 갖게 했다. 오기 전에 한국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것들이 생각과 달랐다. 시간이 지나도 익수해지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일을 하러 나갔고, 고된 일상이 시작되었다. 몸으로 하는 일에 익숙치 않았던 나는 육체 노동이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다시 첫 날 12시간을 떠올리면 신음하며 집까지 겨우 와서 울었던 게 생각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어려웠다. 공장에서 한국사람들과 중국동포들이 대부분이어서 뭐든 우선순위에 있었다. 얘기를 나누는 언어는 거칠고 매우 위압적이어서, 감정을 표현할 수도, 비난의 얘기에 나를 보호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고, 한국어로의 삶 속에 같이 하고 싶다. 너머 라는 단체 덕분에 문법도 익히고 조금 말 할수 있게 되었다. 자존감도 높아지고.. 이제 한국이 낯설고 어색하지 않다. 길은 찾는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 헛되지 않았다. 얼마전 한 주민은 내가 한국말을 잘한다고 얘기해주었다. 내게는 최고의 칭찬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 최선을 다해 할 때 스스로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몇몇 일을 시키는 사람의 행동이 우리를 주저하게 하기도 하지만. 일자리를 찾을 때면 나이 때문에 많이 부딪힌다. 나이들수록 젊은 사람들보다 강해지고 책임감도 커지는 데. 고향에는 늙은 말이 고랑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곳에서는 연령에 대해 반대로 대한다. 아는 친한 사람들도 오직 나이 때문에 일을 못하고 있었다. 나도 특별한 이유 없이 해고 되었고, 대신 젊은 사람들을 앉혔다. 이 순간에는 한국 생활이 슬프지만 우리는 한국의 보호 아래 살기를 희망하며 이곳에 와 있다. 1.5년 한 공장에서 계속 일을 했고 공장 사정이라 설명하며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다른 공장에서는 공장이 폐업되었다고 얘기하여 지금까지도 한달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때는 우리 동포들이 함께 힘을 합치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일자리 정보를 가지고 전국 시도로 사람들을 보내어 노동자들이 골고루 전국에 흩어져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 제안하고 싶다. 그러면 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일자리 없는 사람들이 그룹지어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국가 경제를 생각하더라도 그렇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더 확고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특히 병이 나면 심각해진다. 일도 못하고, 치료비는 너무 비싸다. 2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일하는 노동자로서만 살면 안 된다, 매일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됬다. 물론 12시간을 일하며 이런 고상한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그림같이 아름답고 황홀한 곳들을 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의 자연은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나를 감동시켰다. 가장 좋았던 계절은 봄인데, 특히 벚꽃이 피는 시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황홀한 것은 보지 못했다. 벚꽃이 만발한 나무는, 함께 걸어갈 화환이 놓인 길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하얀 베네치아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연상시킨다. 이런 한국의 아름다움을 나는 친구들과 나누고 아이들에게 얘기하고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한국에 있는 동안 축제에 참여하고, 외국인을 위한 컨퍼런스에 함께 했던 것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기억들이다. 역사적인 많은 곳들과 박물관, 콘서트, 공연들, 그리고 너무도 행복하게 제주도에도 갔다 왔다. 한국에서 나는 놀라움을 멈추지 못한다. 하루하루, 그리고 더 많이 이 나라를 사랑하게된다, 질서정연하고 호의적인 국민을... 특히 놀랐던 것은 젊은이와 아이들이다. 심하게 어지럽히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늘 공부에 열중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모든 나라마다 힘 쓰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신앙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매우 훌륭하다. 수많은 교회, 절들은 이곳이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걸 증명해준다. 이런 곳에 믿는 사람이 많고, 저급한 범죄가 없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조용하며 우리도 생활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한국에서 나도 신을 믿게 되었고 십자가를 그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많은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한국은 내게 일만 준 것이 아니라 여행, 삶의 기쁨,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나의 능력을 펼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일이 없을 때 나는 시, 이야기 그리고 메디아코르에 실을 기사를 쓴다. 한국 정부에 감사드린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배울 기회를 주고, 역사, 문화, 전통 그리고 우리 민족의 언어를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신이 한국에 영원한 축복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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