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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21 11:51
17만 고려인들의 후손 한국에서 – 아프면 학교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 / 카카오같이가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281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3892/news [8882]
카카오같이가치 바로가기17만 고려인들의 후손 한국에서 – 아프면 학교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기록노동자 희정 “개인 사정이요.” 최근 들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소냐(가명)는 이리 대답한다. 기다리니 그 사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타지에 와서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체성 혼란’이라고 우아하게 표현될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정 중 얼핏 스쳐간 이야기가 있었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서 쉬었는데, 담임선생님은 그게 이해가 잘 안 되나 봐요.” 나 또한 학교에 가지 않을 핑계 정도로 듣고 말았다. 하지만 대화가 비자와 생활지원 등으로 옮겨가고 소냐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14년 조사이긴 하지만, 국내 거주 고려인 중 62.5%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국내거주 고려인동포 실태조사> 2014, 재외동포재단)
  • 2014년 부터 고려인특별법개정을 요구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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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학교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건강보험이 없는 까닭을 물으니 ‘돈’ 이야기를 한다. “70만원이나 내야 한데요. 그 돈이 어디 있어요.” 소냐의 어머니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아니다. 파견 일용직으로 일하는 많은 고려인들이 그렇다. 지역가입은 보험료가 높다. 게다가 입국한 지 꽤 지나 신청한다면 가입 전 보험료가 소급되어 징수되는데, 이것이 첫 달 보험료에 합산되어 나온다. 소냐가 말한 70만원이란, 가입 첫 달에 내야할 밀린 보험료인 듯 하다. 무엇을 근거로 나온 액수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소냐 가족에게는 큰돈이다. 2-3개월 치 월세와 맞먹는 액수다. “아프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오전에 병원 갔다가 학교로 오라고 그랬어요.” 병원을 갈 수 없다. 동네 의원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치료비의 70%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런 지원이 소냐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병원비만 있나. 약값도 부담이다. 담임교사에게 병원 갈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려니 구차하다. 결석처리 된다. 소냐와 인터뷰를 앞두고, 올해 7월부터 한국에 6개월 이상 머무른 외국인의 국민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보험은 필요하지만, 고려인들에게는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병원비 일이만 원이 아까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소냐의 가족이 어떻게 매달 10만 원(평균보험료) 가량의 돈을 낼 수 있을까. 가난할수록 작은 변화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가입 기준이 국내 체류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는 등 외국인 대상 보험 규제가 엄격해진다고 한다. 보험료도 인상된다. 하지만 저소득층 이주민에 대한 대책은 들려오지 않는다.
  • 고려인 학생에게 1:1 멘토수업 / 사)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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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몰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선조들이 러시아로 간 이후, 가혹한 역사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몇 차례의 이주 끝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뿌리를 지탱해줄 많은 것들이 사라진 후였다. 기반이 취약하기에 지원이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원 정책의 부재는 상상 이상으로 이들의 삶을 해친다. 소냐는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학교를 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말을 하지 못 했기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법을 알 수 없었다. 온 종일 혼자였을 12살 아이를 상상해본다. “그때는 동네가 조용하고 깨끗했어요.” 모두가 일터와 학교에 있을 시각, 한적한 동네에서 무료한 시간을 견뎠다. 1년 뒤 학교에 들어갔지만 상황은 별다르지 않았다.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홀로 기다리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이 되어 고려인지원센터를 스스로 찾을 때까지 소냐는 한글 교육을 받지 못했다. 소냐의 어머니가 양육에 관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지금은 통역 봉사를 할 정도로 말이 능숙하다. 8년이 지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자라온 동안 한국은 소냐에게 살만한 나라였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일할 수 있으니까요.”일을 찾아 헤매고나눈 이야기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 소재가 ‘일’이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다. 식당에서도 일하고 공장에 파견알바도 갔다. 혼자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제조업 일자리를 구했단다. 용감하다고 감탄했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야 했을 시간이 그려졌다. 집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뿐이다. 공장 일은 고됐다. 출퇴근용 승합차에 실려 공장에 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승합차에 실려 왔다. “말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내 옆에서 ‘쟤는 고려인이니까 돈을 덜 줘도 된다’고 그랬어요.” 꿈이 노무사라고 했다. 노동에 관한 법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돈 모아 ‘인력사무소’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흔히 듣기 힘든 장래희망 직업이다. 이유를 물으니 고려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단다. 소냐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돈이다. 일을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제가 f-1(방문동거 비자)이예요. 그 비자로 공장 알바 못 가요. 그런데 제가 한국어를 해서 갈 수 있었던 거예요.” 한국어 실력과 비자 취득. 그런데 알다시피 한국어 교육은 지원이 늦었고, 비자 문제는 소냐에게 늘 공포를 안겨줬다. 소냐는 고려인 4세로, 현행 법은 고려인 3세까지를 재외동포로 인정한다. 그래서 성년이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한숨 돌릴 만한 소식이 있었다. 고려인 4세도 동포 자격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재외동포법 시행령)이 예고된 것이다. 법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소냐는 친척도 없는 우즈베키스탄에 혼자 가야 한다. 그런데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고 했다. 비행기표 값부터 걱정한다. 소냐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체류자격만이 아니다. 졸업하기 전부터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생활의 안정이 부재하다.
  • 2013년 겨울, 파견업체가 즐비한 땟골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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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국내 체류 외국인이 2백만 명을 넘어선 것도 이미 몇 해 전. 결혼이민과 재외동포 등 준영구 이주자도 1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주는 당사자에게도, 이주를 받아들이는 장소에도 세대를 넘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주요 이주정책은 주로 ‘외국 인력 활용정책’에 맞춰져 있다. 인력정책으로 접근하면 결국 1차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이 우선되게 된다. 지원정책도 그에 맞춰 제공된다. 단기노동력, 그러니까 일회용 노동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집단(이주노동자)에겐 가족 단위의 복지와 지원이 고려되지 않는다. 머물면 안 되는 존재라 여기니까. 그런 이유로 다문화(결혼이주여성) 가족과 이주노동자 가족이 받는 지원정책은 꽤나 차이가 난다. 소냐에겐 지원되지 않던 한글 교육이 다문화 가족에게는 방문 교육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지원된다. 보육 서비스, 주거 지원도 마찬가지다. 고려인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는 이 지점에서 모순된다. 한민족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을 조상들의 나라라 여기길 바란다. 이들이 한국 땅에서 살고 싶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이 따라와야 하는데, 이는 저임금 외국인력 정책과 어긋난다. 저임금 3D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수가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 교포들이다. 몇 년 사이, 고려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지원 조례가 제정되고, 고려인지원센터가 안착되는 등 지원정책이 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폭넓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알다시피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다. 외국인이건 동포이건 국적이 무엇이건, 사람이 왔다. 그의 체류를 허가했다면, 그의 터전 또한 마련해야 한다. 그가 지낼 장소를 내어주어야 한다. 그 장소가 때론 가족이 된다. 가족단위 생활지원이 필요하다.
  • 2013년, 지금은 고단한 한국삶을 이겨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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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꿈꾸게 하는 지원소냐는 공인노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같이 자리한 친구는 군인이 되고 싶단다. 이들 직업의 자격 요건이 그제야 떠올랐다. ‘공인’이 붙는 자격증을 외국국적 사람이 취득할 수 있을까. 고려인 청소년들이 말해준 희망직업들이 준 영주권에 가까운 체류자격을 요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소냐에게 시험 응시자격을 아냐고 물었다. 생각해본 적 있는지 영주권 이야기를 한다. “돈(소득)이 그렇게 없어요.” 귀화나 영주권을 획득하기 위한 최저 소득기준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다. 2019년 기준으로는 약 3천 4백만 원 정도다. 비자에 따라 4년 이상 근무처 변경이 없어야 하고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는 등 몇 가지 조건이 더 있지만, 고려인들은 이미 소득 기준에서 고개를 젓는다. 구소련 지역 동포들의 문제가 알려진 후 체류 자격이 완화되고 있다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는다. 부모 세대에 부재했던 지원 정책은 빈곤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는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대물림을 끊는 것은 자립과 정착을 지원하는 제도일 것이다. f-1(방문동거 비자)인 상태에서 f-4(재외동포비자)를 거쳐 f-5(영주권)에 도달하기까지, 소냐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당장은 살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쓸 것이다. 대학 교육도, 취업도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는 미래를 꿈꾼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꿈꾼다. 미래를 보지 않으면 무엇을 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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