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해였다. 여기저기서 굵직한 행사와 단체가 창궐했다. 나는 안산을 기반으로 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국민위원회’에 참여했다. 제도개선단장직을 맡아 고려인특별법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의안번호 2007586, 2008676, 2009338 등이 그 결과물이다.
의안번호 2007586은 소관 외교통일위원회, 관련 법제사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교육위원회에 2017년 6월 27일 회부됐고, 2017년 8월 21일 제353회 국회(임시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소위회부결과 2017년 9월 19일 제354회 국회(정기회) 제1차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됐다. 의안번호 2008676, 2009338도 시기는 다소 상이하나 비슷한 경위를 거쳐 상정됐다.
딱 거기까지였다. 법안 발의에 그쳤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다. 그나마 2017년 9월 12일 법무부가 “4세대 고려인, 중국동포가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국내체류 중인 부모와 헤어지는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에게 2017년 9월 13일부터 2019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방문동거(F-1) 자격을 부여하는 인도적 조치를 마련, 시행하기로 했다”는 것이 유일한 제도개선 결과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법률도 아닌, 시행령도 아닌, 시행규칙도 아닌 그 밑의 지침 변경이기에 제도개선이라 부를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처음부터 고려인특별법 개정운동은 임시방편이었다. 재외동포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건너뛴 채 고려인의 특수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적 한계, 정부부처간 업무분장을 내세운 소극행정의 한계, 고려인 역사를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우리 역사의식의 한계, 국내체류 고려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이 없었다는 주체의 한계, 고려인 4세문제는 고려인 문제의 단편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던 소재의 한계, 제도개선단이라지만 변호사 1명이 ‘알아서 해야 했던’ 역량의 한계, 무엇보다 이 모든 한계를 알면서도 감행해야 했던 절박함의 결과물이 고려인특별법 개정안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려인특별법 문제를 되짚어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고작 1년이지만 애증 관계가 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8월 말 광주 고려인인문사회연구소 초대로 ‘귀환동포법제정을 위한 (헌)법률적 기초에 관한 연구’ 작업을 한 외에는 애써 모른 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땟골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게 화근이었다. 다시금 소집된 제도개선위원회(가칭)는 전보다 더 성숙해졌고 더 많은 기대를 품게 한다.
무엇보다 고려인들이 뭉치고 있다. 오는 12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8만 국내 고려인의 대표 대한고려인협회가 발족식을 갖는다. 나도 다시 한 번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보려 한다.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서치원 변호사·경기중앙회(원곡 법률사무소)
저희 너머를 다방면에서 도와주고 계시는 서치원 변호사님의 글입니다.
고려인들의 법적 지위 개선이 많이 요원한 상태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