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단체 “고려인 특징 무시”… 관계자 “명확한 판단 불가”
올해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고려인 ‘마춘걸 선생’ 후손이 제출한 출생증명기록에 대해 정부가 서훈보다 늦게 등록됐다는 이유만으로 후손 인정을 거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3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지난 1921년 한반도를 점령한 일제가 대륙으로 진출할 때 시베리아 이만 지역에서 한인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던 고려인 마춘걸 선생(1902~1938)은 학생들을 이끌고 대한의용군(大韓義勇軍)에 참여, ‘이만 전투’와 ‘연해주 해방 전투’ 등에 투입돼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 같은 공훈을 인정받은 마춘걸 선생은 ‘3ㆍ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2월, 국민장을 받으며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이에 마춘걸 선생의 후손들은 생존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외손자인 유이고리씨(64ㆍ우즈베키스탄 거주 중)를 독립유공자 수훈자 후손으로 정식 등록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마춘걸 선생은 지난 1938년 1월 스탈린 대숙청 사건 속에서 억울하게 간첩 혐의를 받아 소련으로부터 처형됐고, 그의 아내 마신헌 역시 같은 혐의로 노동수용소인 굴라그(Gulag)로 보내졌다. 이로 인해 마춘걸 선생의 어린 자녀 2명은 친척 사이를 떠돌며 생활하는 등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호적이나 출생 등록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존 가족관계를 증명할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후손들은 마춘걸 선생과의 관계를 증명하고자 지난 4월 러시아에서 재판을 진행, 러시아 사법부로부터 마춘걸 선생과 후손들의 관계를 인정받아 지난 6월 러시아 행정당국에 판결문을 근거로 정식 출생기록 등록을 완료했다.
이후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했으나 돌아온 것은 ‘후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국가보훈처는 상훈법을 근거로 신청자와 독립유공자 간 친족관계가 공적기록상에서 객관적으로 입증될 경우에만 후손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독립유공자 서훈 이후 뒤늦게 복구된 출생기록은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마춘걸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도운 고려인지원단체 ‘너머’ 관계자는 “과거 소련 시절 어려움을 겪었던 고려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일방적으로 후손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며 “과거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 조장원의 고려인 후손도 마춘걸 후손과 같은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고려인의 특징을 무시한 채 국내 기준의 증빙만 요구하는 것은 고려인 후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 관계자는 “러시아 관련 기관 확인 결과, 뒤늦게 복구된 출생기록은 출생 당시의 입증자료 없이 소급 작성된 것”이라며 “마춘걸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될 때 출생기록이 없어 후손이라고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현숙ㆍ채태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