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광주 조선대병원 입원실. 병상에 누운 고려인 동포 3세 이마리나(48)씨 옆을 지키는 아들 이블라디미르(29)씨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노동으로 힘겹게 사는 처지에 병원비 2100여만 원을 감당하기가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씨는 지난달 초순 일 나가던 중 빙판길에서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몸에 이상을 느꼈지만 막노동을 하다 경남 거제도 공장으로 일하러 간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연락하지는 못했다. 홀로 앓던 이씨는 증세가 심각해지자 아들과 집 근처 병원에 갔다. 며칠간 입원해 치료를 받아 증세가 호전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6일, 퇴원을 앞두고 갑자기 뇌 혈관이 터져 대학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뇌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경과는 좋다. 하지만 수술비 부담에 모자(母子)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원비는 계속 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살던 이씨는 지난해 남편을 잃자 둘째 아들과 큰 손자를 남겨두고 한국으로 돈을 벌러 왔다. 먼저 한국으로 건너가 생활비를 부쳐오던 큰아들을 거들어 주려는 마음이었다. 작년 10월 말 입국한 이씨는 고려인 4000여 명이 모여 사는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마을에 정착했다. 이씨의 할아버지는 옛 소련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이었다.
조국(祖國)에서 아들을 만난 이씨는 광주와 가까운 나주나 함평 등지 농가에서 하우스 일을 하며 품삯을 받아왔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꾸려가다 큰일을 당했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90일간의 입국 체류 일수에 이틀이 모자란 시점에 수술을 받는 바람에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고려인들의 80%는 고용이 불안정한 일용직이라 체류 기간 90일을 채워 보험에 들 자격을 얻더라도 매달 10만원가량인 보험료를 내기가 버겁다고 한다.
이씨 모자의 딱한 사정이 고려인마을방송(FM), SNS를 통해 알려지자 고려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약 200만원을 모았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동포들이 자기 일처럼 여기고 동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이번 일요일에 고려인센터에 모여 5000원, 1만원씩 돕자"고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