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기획]
한국에 사는 이방인, 마이그런트 200만 <하> 다문화 공존 위해 교육부터 바꾸자
초등학교 수업을 마친 고려인 아이들이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려인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온 러시아 국적 고려인 3·4세들은 한국말을 배우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한다. 김경빈 기자
“지에브라.”(러시아어로 얼룩말이란 뜻)
“얼룩말.”
한국말 못한 채 초등학교 입학
다문화 예비학교 전국에 120곳
대덕초엔 일대일 특별학급도
인종 뛰어넘은 ‘다문화 도서관’
“선생님도 다문화 감수성 키워야”
IT 활용한 온라인 멘토링도
7일 오후 5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려인문화센터 2층 교실에서 한글 수업이 한창이었다. 한국어 강사 신페루자(43·여)씨가 러시아어로 동물을 설명하자 학생들은 한국어로 답했다.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고려인과 러시아 국적 이주민 자녀로 대부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7세 또래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방과후 수업을 받으러 센터에 온 아이들의 한국어 수준은 같은 연령대 한국 아이들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이름이 뭐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가 많았다. 수업은 아이들을 배려해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진행됐다. 강사는 학생들의 한국어 발음을 일일이 교정해줬다.
고려인 문화센터 주변 빌라촌은 ‘고려인 마을’로 불린다. 김영숙 고려인문화센터 사무국장은 “센터 주변에만 고려인 4000~5000명이 모여 살고 안산시 전체를 놓고 보면 1만 명이 넘는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5년 전부터 고려인 이주민이 눈에 띄게 늘었다. 바로 옆 선일초에만 고려인 학생 120여 명이 재학하고 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한글을 읽고 쓸 줄 몰라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고려인문화센터에선 오후 4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에 재학 중인 이주민 학생수는 9만9000명을 넘어섰다. 이 중 초등학생이 7만4024명으로 절반을 훨씬 넘는다. 이주민 학생 증가는 예사롭지 않다. 다문화가정 중 만 6세 이하 미취학 아동은 지난해 기준으로 11만6000여 명으로 조사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주민 아이들도 있어 실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15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자녀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84.5%로 조사됐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5.5%였다. 교육부 다문화교육지원팀 김진형 과장은 “올해 전국 다문화 유치원을 60곳에서 90곳으로 늘리는 등 다문화 학생수 증가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학생들에게 수준별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는 예비학교는 증가 추세다. 2012년 26개교에서 시작된 예비학교는 지난해 120개교를 넘어섰다. 예비학교를 제외한 교육 지원책은 대부분 시범사업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다문화 특성화학교를 선정해 2년간 예산을 지원하고 다른 학교를 다시 선정하는 형태다. 교육 현장에서 예비학교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대전 대덕초등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특별학급이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문화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대덕초는 다문화 교육 선도 학교로 꼽힌다. 전국적으로 보급된 예비학교의 롤모델이 바로 대덕초다. 대덕초 예비학급은 학교 입학생뿐 아니라 인근 지역 학교의 다문화 학생까지 포용해 수준별로 나눠 한국어를 가르친다. 맹재숙 대덕초 국제문화부장은 “올해 예비학급에는 신입생 6명이 입학했다.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년 정도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입학한 학교로 복귀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덕초 특별학급은 다문화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다. 국어·사회·수학 세 과목으로 운영되며 한국어 이해력이 짧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특별 수업 형태로 운영된다. 한국어 문제로 수학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다문화 학생은 특별학급으로 옮겨와 수학을 공부한 다음 복귀한다. 일반학급에 비해 학생수가 적다 보니 일대일 지도가 가능한 게 특별학급의 장점이다. 특히 한국어 때문에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맹재숙 부장은 “다문화 아이들은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부모 재혼 등으로 한국에 온 경우가 많다 보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동기가 한국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부모들은 한국말 쓰는 학교에 보내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교육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2008년 설립된 국내 최초 다문화 도서관 ‘모두’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5일 들른 도서관은 누워서 책을 보는 학생 등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도서관에선 한국인을 ‘선주민’으로, 다문화가정은 ‘이주민’으로 부른다. 사서 이지원(30)씨는 “방문자 비율은 선주민과 이주민이 반반”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한국어 도서 1만4000여 권을 비롯해 몽골·캄보디아 등 22개국의 책 9000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문종석 관장은 “도서관은 인종과 피부색 등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곳이자 책을 매개로 국적이 서로 다른 부모와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도서관이 운영하는 언어 동아리반이 대표적이다. 문 관장은 “일본어 동아리반에선 일본 출신 엄마들이 한국 엄마들을 가르친다. 전세가 뒤집히는 것이다. 다문화 체험행사가 있는 날에는 다양한 국적의 엄마들이 함께 모여 설거지를 한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고 놀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30개 정도의 다문화 도서관이 있는데 이를 더 늘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부모들의 교류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앞선 정보기술(IT)을 다문화가정 교육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외대가 운영하는 사랑의 다문화 학교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7일 오후 7시 한국외대 본관 603호.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 이소정(25·여)씨가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베트남 다문화가정 A군(11)과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씨는 “잘했어. 하이파이브”라고 말하면서 화면에 손바닥을 댔다. 이씨는 “숙제를 잘해 와 칭찬했다. 전국에 있는 다문화 학생 10명에게 온라인으로 이중언어 멘토링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몽골어 멘토 신민선(29)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학생들은 한국어는 잘하지만 외국 출신 부모의 언어에는 서툴다.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마치면 한국어를 못하는 친척들과 교류가 가능해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다문화교육원 박종대 연구원은 “이중언어 교육은 언어 습득뿐 아니라 외국 출신 부모를 이해하고 나아가 그 국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교과서를 포함해 학교 속 ‘차별 코드’는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 ‘찬다 삼촌’편에는 네팔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는 손으로 음식을 먹고 한국말이 서툰 캐릭터로 묘사돼 있다. 교과서 곳곳에는 내국인 가족을 ‘정상’으로, 다문화가정은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한국건강가정 진흥원 다문화이해 강사 안정숙(47·여)씨는 “세계인의 날 행사장에 가보면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서 먹거리를 만드는 풍경이 대부분이다.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야 홍보가 더 잘된다고 말하는데 그게 한국의 다문화 이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출신으로 2005년 한국에 왔다는 안씨는 “강의 준비를 위해 교과서 등을 읽다 보면 차별적인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다문화이해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토 교코(44·여)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2005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사토는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 시작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선생님의 편견 때문이었다. 일선 학교에 있는 선생님부터 다문화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학생들의 ‘한국화’에서 벗어나야 편견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혜선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다양한 인종이 모인 미국은 멜팅폿(Melting Pot) 개념을 폐기하고 최근에는 샐러드볼(Salad Bowl)이란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 다양한 재료를 섞은 샐러드처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문화 학생에 대한 한국어 교육은 필요하지만 한국인처럼 생각하게 문화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한국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 학생들의 역량을 키워 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다문화 학생들을 분리해선 안 된다. 한국 아동·청소년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성호준·강기헌·박민제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윤광일 소장·김현숙 책임연구원·신혜선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