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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1 18:57
[연합뉴스]<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마르지 않는 고려인의 눈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005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20/0200000000AKR201606201… [8233]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마르지 않는 고려인의 눈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 2016년 6월 8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사장.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남모(63) 씨가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사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에 따른 돌연사로 추정됐다. 5년 전 한국에 온 아내를 따라 아들과 함께 입국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맞은 비극적인 최후였다. 남 씨는 한국말을 못하는 데다 고령이어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숨진 당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유족은 빈소를 마련할 여유도 없어 이튿날 화장을 치른 뒤 경기도 안산의 자택에 유골함을 안치하고 조촐한 제사상을 차리는 것으로 장례식을 대신했다. 부인은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형제들의 도움으로 콜호스(집단농장)의 묘역에 남편의 유골을 묻었다.


#2. 같은 날 경기도 안산시의 한 프레스공장.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또 다른 고려인 박모(55) 씨는 철골 구조물에 머리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박 씨는 그나마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회사 동료들이 돕고 나서 상주인 딸이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3. 1863년 봄,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地新墟). 함경북도 경원에 살던 13가족 6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이곳에 정착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카레이츠·카레이스키'(코리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려인'으로 자칭했다. 이후 고려인은 해마다 늘어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경술국치, 1919년 삼일운동을 거치며 연해주는 항일운동의 전초기지가 됐다. 최재형·이범윤·이상설·이위종·이동녕·홍범도·이동휘 등 수많은 독립투사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다. 일제는 1920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 마을 신한촌에서 방화와 학살을 저지르는 '4월 참변'을 일으켰다. 이듬해 7월에는 항일독립군 지휘권을 둘러싼 대립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고려인 군인 수백 명을 사살하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5. 1991년 11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 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자 원주민들이 러시아인을 제치고 실권을 잡았다. 이를 계기로 이슬람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고려인의 입지는 급격히 약화했다. 더욱이 공용어이던 러시아어를 못 쓰게 되자 우즈베크어를 모르던 고려인들은 갑자기 사회부적응자의 처지에 놓였다. 이웃 나라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급격한 체제 변화 속에 사회 불안까지 더해져 많은 고려인이 남부 러시아나 연해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또다시 이주했다.


#6. 2007년 3월, 인천국제공항.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방문취업제가 실시되자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고려인이 급증했다. 2012년 7월 기술자격증을 취득하면 재외동포(F-4) 비자를 주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내 거주 고려인은 더욱 늘어나 지금은 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우리와 생김새가 똑같지만 '2등 시민' 격인 조선족(중국동포)에 이어 '3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조선족이 북한식 사투리가 섞여 있긴 해도 한국어 구사에 큰 문제가 없는 것과 달리 고려인은 대부분 우리말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조선족은 건설 현장의 십장도 하고 식당 홀서빙도 하는데 고려인은 단순노무나 설거지가 고작이다.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심지어 '보이스피싱'에도 못 써먹는다는 말까지 듣는다. 재외동포재단이 이민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8∼10월 국내 거주 고려인 1천1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한국어 구사능력은 단순노무직 외국인 노동자보다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50여 년을 이어져 오는 고려인의 수난사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오갈 데 없어 찾아온 '선조의 고향'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6/21 07: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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