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국회토론회(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열린 에서 고려인이 증언하고 있다. saba@yna.co.kr
국회서 '국내체류 불안사례 보고회'…고려인법 토론회도 열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2012년 남편과 두 자녀를 데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재외동포 비자(F-4)로 입국했는데 결혼이민자로 온 고려인 친구와는 처지가 다릅니다. 그 친구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역 요원에 지원했는데 전 응시 자격이 없었습니다. 첫째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비용이 한 달에 40만 원이나 됩니다. 지금도 부담이 커서 둘째는 엄두도 못 냅니다."(김나제즈다 씨)
"3개월마다 비자 스탬프를 찍으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갑니다. 동포 비자로 들어와 일하시는 아버지와 달리 전 고려인 4세여서 3개월짜리 단기관광 비자(C-3)만 받을 수 있습니다. 불편은 감수할 수 있으나 오가는 비용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불법으로 야간에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불안한 마음에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야학당에 다니며 낮에는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습니다."(차가이 안드레이 씨)
"전 우즈베키스탄에 살았습니다. 남편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살림이 어려워지자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살기가 힘겨워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왔습니다. 여러 공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한국말이 서툰 제게는 힘든 일이 맡겨졌고 하루아침에 전화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한국에 단기 비자로 들어온 22살짜리 아들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을 다쳤습니다. 일부 병원비는 받았지만 업주와 인력사무소는 불법취업을 이유로 추가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재활이 필요한데 막대한 의료비가 걱정입니다."(황마리아 씨)
더불어민주당 김경협·민병두·전해철 의원실이 고려인강제이주80년기억과동행위원회·고려인강제이주80년국민위원회·고려인강제이주80주년기념사업회·재외동포재단과 함께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한 '고려인 동포 체류 불안 사례 보고회 및 고려인동포법 개정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모국으로 귀환한 고려인들의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다.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의 김진영 사무국장은 이밖에도 내년에 고등학교를 마치면 부모와 헤어져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안산시 선부고 2학년 연안나 양, 91년 소련이 해체될 때 국적을 상실한 아르메니아 출신의 무국적자 김제니스 씨,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급성흉부대동맥박리증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박레오니드 씨 등의 사례를 보고했다.
강제이주80년기억과동행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김경협 의원은 사회자 곽재석 이주동포정책개발원장이 대신 읽은 2부 토론회의 발제를 통해 "현행 고려인동포특별법과 재외동포법 시행령은 국내 거주 고려인이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고 3세까지만 동포로 인정해 문제가 많다"면서 "고려인동포법 지원 대상을 '국내에 체류 중인 자'로 확대하고 긴급 의료, 한국어 교육, 보육, 체류자격 취득 지원 등 생활안정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려인 동포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 년 계획'에 포함된 만큼 정부 차원의 노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고려인 동포의 유입은 인구 절벽 시대에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를 확대할 뿐 아니라 많은 가능성을 지닌 유라시아 국가들과 우리의 경제적·문화적 가교를 놓는 새로운 민간외교의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제이주80년국민위원회 제도개선단장인 서치원 변호사는 "고려인 동포의 10%인 5만 명가량의 무국적자가 있으나 현행 재외동포법은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만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무국적 동포들은 입국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라며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동준 재외동포재단 기획이사는 "법무부나 고용노동부 등은 고려인 동포와 다른 지역 동포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며 "따라서 법 개정 과정에서 외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발생 가능성, 비한국계 외국인과의 차별적 대우에 대한 불만, 고려인 동포의 모국 귀환에 따른 현지 동포사회의 공동화 및 해체 가능성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승력 너머 이사는 "형평성 문제를 들어 강제이주로 모국어를 잃어버린 고려인들을 다른 지역 동포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아픈 곳이 다른 데 같은 약을 처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홍인화 고려인마을 상임이사는 "법 개정뿐만 아니라 동포, 이주민, 외국인, 다문화, 탈북자, 재외국민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동포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진영 인하대 교수는 "특별법보다는 일반법으로 '국내체류 동포지원법'(가칭)을 제정하고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국내체류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에 앞서 축사에 나선 민병두 의원은 "이스라엘은 참전 군인뿐 아니라 나치 만행의 민간 피해자와 그 기간에 유대인을 도운 이방인까지 국가의 보훈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고려인은 우리 역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존재이고 전 세계인의 반성과 교훈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해철 의원은 "오랫동안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다 고국의 품을 찾아 귀국한 고려인 후손들은 취약한 경제 기반과 언어 장벽으로 인해 국내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철기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나 광주·안산의 고려인마을을 방문했을 때 모국에서의 합법적 체류를 바라는 고려인 4세 청소년들의 호소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면서 "모국에 돌아온 고려인 동포를 품는 노력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재단도 가능한 노력을 더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heeyong@yna.co.kr
국회서 '국내체류 불안사례 보고회'…고려인법 토론회도 열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2012년 남편과 두 자녀를 데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재외동포 비자(F-4)로 입국했는데 결혼이민자로 온 고려인 친구와는 처지가 다릅니다. 그 친구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역 요원에 지원했는데 전 응시 자격이 없었습니다. 첫째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비용이 한 달에 40만 원이나 됩니다. 지금도 부담이 커서 둘째는 엄두도 못 냅니다."(김나제즈다 씨)
"3개월마다 비자 스탬프를 찍으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갑니다. 동포 비자로 들어와 일하시는 아버지와 달리 전 고려인 4세여서 3개월짜리 단기관광 비자(C-3)만 받을 수 있습니다. 불편은 감수할 수 있으나 오가는 비용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불법으로 야간에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불안한 마음에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야학당에 다니며 낮에는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습니다."(차가이 안드레이 씨)
"전 우즈베키스탄에 살았습니다. 남편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살림이 어려워지자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해부터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살기가 힘겨워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왔습니다. 여러 공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한국말이 서툰 제게는 힘든 일이 맡겨졌고 하루아침에 전화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한국에 단기 비자로 들어온 22살짜리 아들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을 다쳤습니다. 일부 병원비는 받았지만 업주와 인력사무소는 불법취업을 이유로 추가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재활이 필요한데 막대한 의료비가 걱정입니다."(황마리아 씨)
더불어민주당 김경협·민병두·전해철 의원실이 고려인강제이주80년기억과동행위원회·고려인강제이주80년국민위원회·고려인강제이주80주년기념사업회·재외동포재단과 함께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한 '고려인 동포 체류 불안 사례 보고회 및 고려인동포법 개정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모국으로 귀환한 고려인들의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다.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의 김진영 사무국장은 이밖에도 내년에 고등학교를 마치면 부모와 헤어져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안산시 선부고 2학년 연안나 양, 91년 소련이 해체될 때 국적을 상실한 아르메니아 출신의 무국적자 김제니스 씨,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급성흉부대동맥박리증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박레오니드 씨 등의 사례를 보고했다.
강제이주80년기억과동행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김경협 의원은 사회자 곽재석 이주동포정책개발원장이 대신 읽은 2부 토론회의 발제를 통해 "현행 고려인동포특별법과 재외동포법 시행령은 국내 거주 고려인이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고 3세까지만 동포로 인정해 문제가 많다"면서 "고려인동포법 지원 대상을 '국내에 체류 중인 자'로 확대하고 긴급 의료, 한국어 교육, 보육, 체류자격 취득 지원 등 생활안정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려인 동포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 년 계획'에 포함된 만큼 정부 차원의 노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고려인 동포의 유입은 인구 절벽 시대에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를 확대할 뿐 아니라 많은 가능성을 지닌 유라시아 국가들과 우리의 경제적·문화적 가교를 놓는 새로운 민간외교의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제이주80년국민위원회 제도개선단장인 서치원 변호사는 "고려인 동포의 10%인 5만 명가량의 무국적자가 있으나 현행 재외동포법은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만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무국적 동포들은 입국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라며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동준 재외동포재단 기획이사는 "법무부나 고용노동부 등은 고려인 동포와 다른 지역 동포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며 "따라서 법 개정 과정에서 외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발생 가능성, 비한국계 외국인과의 차별적 대우에 대한 불만, 고려인 동포의 모국 귀환에 따른 현지 동포사회의 공동화 및 해체 가능성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승력 너머 이사는 "형평성 문제를 들어 강제이주로 모국어를 잃어버린 고려인들을 다른 지역 동포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아픈 곳이 다른 데 같은 약을 처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홍인화 고려인마을 상임이사는 "법 개정뿐만 아니라 동포, 이주민, 외국인, 다문화, 탈북자, 재외국민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동포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진영 인하대 교수는 "특별법보다는 일반법으로 '국내체류 동포지원법'(가칭)을 제정하고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국내체류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에 앞서 축사에 나선 민병두 의원은 "이스라엘은 참전 군인뿐 아니라 나치 만행의 민간 피해자와 그 기간에 유대인을 도운 이방인까지 국가의 보훈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고려인은 우리 역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존재이고 전 세계인의 반성과 교훈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해철 의원은 "오랫동안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다 고국의 품을 찾아 귀국한 고려인 후손들은 취약한 경제 기반과 언어 장벽으로 인해 국내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철기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나 광주·안산의 고려인마을을 방문했을 때 모국에서의 합법적 체류를 바라는 고려인 4세 청소년들의 호소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면서 "모국에 돌아온 고려인 동포를 품는 노력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재단도 가능한 노력을 더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heeyong@yna.co.kr